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어른이 됐을 때의 세상은 어릴 때 보던 모든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교류가 적어진 이웃,
학교에서 배운 도덕이란 없는 듯한 세상,
사회의 일원이 아닌, 사회의 소모품으로 굴러가는 사람들,
그중에서 오늘 얘기해 볼 건 배달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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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직 스마트폰이 없었을 시절,
배달 음식은 거의 무조건 전화를 통한 배달이었다
세상의 발전,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어느샌가 전화 없이 손가락 몇 번만으로 음식을 배달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사회성이 극도로 적어, 모르는 사람과 전화조차 쉽지 않은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천국이었다
그렇게 누워서 전화가 아닌 손가락으로 배달을 시키던 어느 날,
자주 시켜 먹던 집에서 메뉴가 하나 누락돼서 온 적이 있다
누락된 음료,
별생각이 없었다
아니, 사실은 화가 났었다
일을 하지 않는 백수 한량인 나에게 음료 하나의 가격에서 오는 타격은 생각보다 컸다
화가 난 나는, 리뷰에 수많은 글자를 적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내 안의 화를 점점 키워만 갔다
이 글을 읽는 그대들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가?
자신이 항상 열등품의 인간 그 이하라고 생각한 나는, 남들이 말하는 평범에라도 근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책을 읽는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그런 문장이 있었다
'적에게 절대 복수하려 하지 말라. 복수는 상대보다 자신을 더 크게 상처 입힌다'
'아이젠하워 장군이 그랬던 것처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느라 단 1분도 허비하지 말자.'
리뷰에 자신의 추악함에 못 이겨 마음 가는 대로 욕설을 적던 나는 회의감이 들었다
바쁜 가게, 늦은 시간대
어쩌다 한 번 누락된 메뉴
적도 아닌 나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해주신 분들께, 복수할 이유가 있을까?
모든 추악함을 지우고 '잘먹겠습미다아아아아'라는 리뷰를 남긴 채, 추악함을 지웠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추악함을 억눌렀다는 쓸모없는 자기만족
다행히도 어쩌면 복수를 한 것보다 훨씬, 나에겐 마음이 가벼웠다
아마, 욕을 남겼다면 잠깐의 기분은 좋았겠지만, 계속 생각나고 후회했겠지
그런 내 마음이 통했을까,
시간이 지나 다시 한번 그 가게에서 배달을 시켰을 때,
메뉴가 또 다시 누락됐다
...화가 났다
그것도 음료가 아닌 반찬 중 하나,
흔히 말하는 보통인 저녁 식사 시간,
누락된 메뉴
하지만 이미 있었던 일이다
메뉴가 하나 안 왔다고 내가 굶어 죽거나
지구온난화가 심해지거나
행성이 충돌해서 지구가 멸망한다든가 하지 않는다
괜찮다
다시 한번 추악함을 가라앉히고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리뷰를 남긴 채
또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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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배가 고팠다
일어나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백수 한량의 전형적인 엉망의 생활패턴,
24시간 가까이 깨어있었는데도,
그러고는 4시간밖에 자지 않았는데도,
어째서인지 졸리지도 않았다
너무 배가 고팠던 나는, 오랜만에 그 가게가 생각나 배달앱을 설치했고,
또
메뉴가 누락됐다
...화가 났었다
진짜
그것도, 많이
심지어 음료 하나가 시킨 것과는 다른 음료가 온 듯 했다
너무 화가 났던 추악한 나는,
최대한 책에서 봤던 내용을 참고하며 내 분노를 담은 리뷰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미 지운 글이기에 느낌만 살려 다시 적어봤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항상 잘 먹고 있습니다
귀하의 음료에 중독돼서 맛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항상 행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옵고 지난 주문 몇 번, 메뉴가 누락돼서 오는 일이 있습니다
음료 한 번
반찬 한 번
그리고 오늘, 다시 음료 한 번
심지어 오늘은 음료가 주문한 음료가 아닌 다른 음료가 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 정신이 없어 메뉴가 빠진 것이로 생각됩니다
혹은, 배달 중, 의문의 무언가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귀찮으시겠지만 다음에는 한 번 더 확인을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글을 쓰고 리뷰 저장을 누르기 전,
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평소에 전화를 잘 받지 않는 나였지만,
화가 난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가게입니다'
'죄송합니다. 정신이 없어서 메뉴가 하나 빠져서 간 것 같습니다'
'이미 식사하셨다면 따로 환불을 해드려도 괜찮을까요?'
피로와 미안함이 가득한 목소리
...환멸이 났다
내가 리뷰에 쓴 모든 저 문장이
너무나 추악해 보였다
무엇보다
나는 그저 사과받고 싶었구나
나에게로의 환멸
저 한마디에 또다시 나는 모든 추악함을 지우고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라는 리뷰를 남긴 채
추악함을 담은 쓸모없는 자기만족을 위한 글을 세상 어딘가에 쓰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어른이 됐을 때의 세상은 어릴 때 보던 모든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교류가 적어진 이웃,
학교에서 배운 도덕이란 없는 듯한 세상,
사회의 일원이 아닌, 사회의 소모품으로 굴러가는 사람들,
하지만 분명히 어딘가엔
사랑이 가득한 이웃과,
학교에서 배운 도덕이 가득한 세상
사회의 소모품이 아닌, 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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